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동로 사건 (문단 편집) == 배경 == 사건의 발단이 된 2,400km에 달하는 중동로는 1896년 청러 밀약에 따라 건설이 결정된 철로였다. 원래 [[만저우리]]에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본선과 창춘에서 다롄으로 이어지는 지선을 포함한 거대한 도로였으나, [[러일전쟁]] 이후 남만주 철도가 일본에게 장악되면서 본선만을 가리키게 되었다. 러시아 군대를 중국으로 수송하는 것이 이 중동로의 건설 목적이었고, 이 과정에서 러시아 제국은 청나라로부터 철도 수비권, 광산 채굴권, 전신전화 건설 경영권, 철도부속지의 사법,행정권, 송화강 항행권 등 막대한 이권을 강탈했다. 이후 [[러시아 혁명]]이 발생하자 [[장쭤린]]은 그틈을 타서 루블화 유통을 폐지하는 등 중동로에 대한 지배권을 상당히 회복하였고, 이후 중동로는 봉천 군벌과 백계 러시아 군벌이 나누어 통치했는데, 볼셰비키 정권은 [[적백내전]]을 치러내느라 정신이 없어서 한동안 이에 간섭하지 못했다. 하지만 적백내전이 끝나자 [[소련]]은 종전의 카라한 선언을 번복하고 중동로 경영권을 요구했다. 결국 1924년 5월 31일 베이징 중소협정 체결로 봉천 군벌과 소련은 중동로에 대한 권리를 나누었으나 실질적인 철도 관리권은 루블화를 결산 화폐로 삼고 기무처, 차무처, 상무처, 재무처 등의 주요 부서를 러시아인이 독점하는 등 소련이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북만주의 경제는 소련에 예속되는 양상을 보였다. 한편 2차 북벌을 통해 베이징을 점령하고 난징정부를 수립한 [[장제스]]의 [[국민정부]]는 열강들이 과거 [[북양정부]]와 맺은 불평등조약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수약외교를 선포하고 미국 등에서 관세자주권을 회수하는 등 실질적인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